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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생각노트] 수국과 카멜레온, 그리고 나

by SuperJoon 2026. 7. 26.

길가를 지나다 문득 무성하게 피어난 수국을 마주했다.

어제 보았던 담장 너머의 수국은 분명 흐릿한 분홍빛이었는데, 오늘 이 계단 옆에 뿌리를 내린 녀석은 투명한 푸른빛을 품고 있었다. 수국은 참 묘한 식물이다. 자신이 고를 수도 없는 흙의 성질에 따라, 산성이면 푸르게, 알칼리성이면 붉게 제 몸의 색을 시시각각 바꾼다. 환경에 따라 꽃잎의 색을 순응시키는 수국의 삶을 보며 사람들은 '다채로운 아름다움'이라며 수식어를 아끼지 않는다.

문득 숲속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카멜레온의 삶이 겹쳐졌다. 포식자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기 위해, 혹은 작디작은 먹이사슬의 한 칸을 차지하기 위해 제 몸을 주변의 나뭇잎과 같은 녹색으로, 흙과 같은 갈색으로 물들이는 존재. 심지어 마음에 드는 상대를 향해 구애할 때조차 온몸의 색을 쥐어짜 내며 제 모습을 바꾸는 생명. 사람들은 그 치열한 마술을 두고 '신비로운 자연의 위대한 적응력'이라 부르며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계통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는 인간, 그리고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가.

나 역시 매일 아침 문을 나서 세상이라는 숲으로 나설 때마다 영혼의 색을 바꿔 입는다. 내가 속한 조직이라는 토양의 결에 맞춰 수국처럼 내 색을 바꾸고, 타인의 시선이라는 풍경에 맞춰 가면을 고쳐 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눈치를 살피는 처세는 기본이다.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고,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도 마음에도 없는 색을 칠하며 내 본연의 덤덤한 빛깔을 조용히 지워낸다.

여기서 문득 지독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남이 하면 숭고한 적응이고 자연의 이치라면서, 내가 하면 왜 서글프고 치졸한 타협처럼 느껴지는 걸까.

식물과 동물의 변화는 '숭고한 적응'이자 '아름다운 본능'이라 포장해 주면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부리는 나의 이 기교와 눈치채기는 왜 스스로에게 그토록 서글프고 치졸한 타협처럼 느껴지는 걸까. 매일 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옅어진 내 본래의 색을 바라볼 때마다 왜 이리 씁쓸한 자괴감이 밀려오는 걸까. 나를 제외한 남들의 변신엔 그토록 관대하면서, 왜 유독 나 자신의 변신에는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대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수국이 흙에 맞춰 색을 바꾸는 것도, 카멜레온이 생존과 구애를 위해 제 몸을 물들이는 것도 모두 그 가녀린 생명을 지켜내고 이어가기 위한 사투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명이라는 건—식물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나라는 인간이든—내 안의 가장 소중한 본질과 알맹이를 지켜내기 위해, 겉모습쯤은 기꺼이 세상에 맞춰 내어주는 치열하고도 가련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만큼은 거울 속 나에게 너무 박하게 굴지 않기로 한다.

오늘도 세상이라는 거대한 숲속에서 내 진짜 빛깔을 지켜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매끄럽게 변신해 낸 나의 이 치졸함 역시—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간절하고도 숭고한 보호색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