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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레트로 IT] 파란 화면 너머의 낭만: SFDISK와 두 개의 윈도우 98

by SuperJoon 2026. 8. 7.

1. 시대적 배경과 MS 운영체제의 기술적 한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대한민국의 대(對)중국 투자가 폭발하고 교역량이 급증하던 격동기였습니다.

당시 사무실 책상 위를 차지하던 뚱뚱한 CRT 모니터의 PC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던 고가 장비였지만, 실제 역할은 본사나 계열사, 거래처로 보낼 서류를 작성하고 팩스를 보내는 '고급 전자 타자기'였습니다. 그런데 중국과의 거래가 늘어나면서 점차 중국어로 된 문서와 팩스 작업이 절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MS) 운영체제의 기술적 한계였습니다. 지금처럼 다국어를 자유롭게 지원하지 못하던 시절이라, 한글 윈도우 98에서는 중문을 제대로 입력하거나 출력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어 업무를 처리하려면 중문 윈도우 환경이 필수적이었으나, 수백만 원짜리 PC를 따로 한 대 더 들여놓기엔 금전적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결국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단 한 대의 PC에 두 개의 운영체제를 깔아 필요할 때마다 선택해 쓰는 것이었습니다.

2. 윈도우 3.1의 착각과 윈도우 98이라는 기술적 절벽

처음엔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DOS나 윈도우 3.1 시절처럼 디스크 파티션이나 설치 경로만 다르게 지정해 주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윈도우 95와 98은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시스템의 부팅 주도권을 잡기 위해 두 운영체제의 부팅 파일이 C: 드라이브 위에서 서로를 덮어씌우며 엉켜버렸고, 컴퓨터는 켜지지도 않고 먹통이 되어버렸습니다. 옛 상식과 경험이 통하지 않는 기술적 절벽 앞에서 한동안 막막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3.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구세주, SFDISK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했기에 관련 자료와 디스크 도구들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발견한 구세주가 바로 리눅스 환경에서도 요긴하게 쓰이던 디스크 관리 유틸리티, SFDISK였습니다.

C: 드라이브를 둘로 쪼개 각각 주 파티션(Primary)으로 만든 뒤, SFDISK만의 최상 무기인 '파티션 숨기기(Hide)' 기능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 1. KWIN98로 부팅하면: 중문 윈도우 파티션을 감춰버려 한글 윈도우만 독자적으로 C: 드라이브를 점유하게 만들고,
  • 2. PWIN98로 부팅하면: 반대로 한글 윈도우를 감춰 중문 윈도우만 깨끗하게 구동시켰습니다.

두 시스템이 서로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게 만듦으로써, 부팅 파일이 꼬이던 그 참사를 SFDISK의 파란 화면 속에서 완벽하게 해결해낸 것입니다.

4.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공용 D:드라이브'의 위대한 가치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절엔 하드디스크 용량도 넉넉지 않았고 가격 또한 어마어마하게 비싸서, 처음엔 C: 드라이브 공간에 그저 두 개의 주 파티션(Primary)만 간신히 나누어 윈도우를 깔아 썼습니다.

그러나 윈도우 98은 툭하면 이유 없이 다운되고 시스템이 깨지기 일쑤였습니다. C: 드라이브를 포맷해야 할 상황이 올 때마다 그동안 피땀 흘려 작성해 둔 서류들을 잃어버릴까 봐, C: 드라이브 구석구석 폴더를 뒤지고 또 뒤지며 파일들을 챙겨야 하는 피 말리는 고난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이 짓을 몇 번 겪고 나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스템 공간과 나의 노동 결과물은 반드시 물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렇게 궁리 끝에 하단에 공용 D: 드라이브(논리 파티션)를 따로 떼어내 만들었고, 마침내 시스템의 완성이 찾아왔습니다.

  • 첫째, 운영체제와 내 노동 결과의 완전한 분리입니다. 잦은 포맷 속에서도 한글이든 중문이든 제가 작성한 소중한 업무 문서는 D: 드라이브라는 안전한 창고에 보관을 맡겼습니다. 덕분에 C: 드라이브에 윈도우가 아무리 꼬여도 아무런 미련 없이, 마음 놓고 포맷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둘째, 시스템 즉시 복구를 위한 전초기지였습니다. 포맷 후 시스템을 다시 잡으려면 각종 부품의 드라이버를 다시 깔아야 했습니다. D: 드라이브에 PC 부품 원본 드라이버와 프린터 드라이버, 상용 유틸리티를 미리 백업해 둔 덕분에, 윈도우를 재설치하더라도 순식간에 필요한 드라이버를 찾아 올리고 완벽한 업무 환경으로 복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5. 파란화면이 준 그 시절 컴덕들의 희열

모든 설정을 마치고 긴장 속에 전원 버튼을 누르면, ‘투둑, 투두둑-’ 하드디스크 읽는 소리와 함께 SFDISK의 정갈한 파란색 부팅 화면이 터져 나왔습니다.

방향키를 딸깍거리며 1. KWIN98을 누르면 국내 본사 및 계열사와 소통할 한글 윈도우가, 2. PWIN98을 누르면 중국 거래처로 보낼 완벽한 중문 서류 작업 환경이 거짓말처럼 열렸습니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든 D: 드라이브엔 모아둔 드라이버와 제 소중한 문서들이 변함없이 나를 반겼습니다.

뚱뚱한 CRT 모니터가 뿜어내는 열기 속에서 밤새 땀 흘려 완성했던 저 파란 화면. 그것은 단순한 시스템 세팅이 아니라,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었던 수많은 시행착오 끝의 값진 승리이자, 대륙과 국경을 누비던 그 시절 현장 엔지니어들의 비장하고도 정겨운 훈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