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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정문이 있는데, 왜 뒷문을 만들었을까

by SuperJoon 2026. 8. 8.

며칠 전 뉴스를 보다가 이런 기사를 봤습니다.

국제적인 통신장비 업체 Zbt…가 만든 라우터에서 백도어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8월 5일 로이터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보안업체 VulnCheck의 연구진이 해당 라우터에서 ‘Endlessdoors’라는 백도어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라우터라면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장비입니다.

그런데 그 장비 안에 사용자가 알지 못하는 뒷문 하나가 있었다는 겁니다.

문제가 발견된 제품은 20개가 넘는 모델에 이르고, 전 세계적으로 최소 10만 대가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회사 측에서는 애프터서비스를 위한 기술지원 기능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문제가 된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관련 펌웨어를 내리는 조치도 취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보안 뉴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뉴스를 읽다가 엉뚱한 생각이 하나 들었습니다.

정문이 있는데 왜 뒷문을 만들었을까?

사람이 남의 집에 들어갈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정문으로 가면 됩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됩니다.

그런데 굳이 아무도 모르는 뒷문을 하나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계속 밖과 연결합니다.

참 묘합니다.

물론 회사의 설명처럼 정말 기술지원 목적으로 만든 기능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알려주면 될 일입니다.

사용자에게

“이런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라고 설명하고 동의를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용자에게 알려지지 않은 문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문이 있다는 사실보다 왜 그 문을 숨겨놓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물건을 하나 삽니다.

내 돈을 주고 샀으니 당연히 내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물건 안에 내가 모르는 문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나는 그 문을 만들지도 않았고, 그 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문을 알고 이용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묘합니다.

사람의 행동도 가끔 비슷합니다.

남의 영역이 궁금합니다.

무엇을 하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당하게 물어볼 용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슬쩍 기웃거립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고,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아무도 모르게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고 부릅니까?

변태라고 합니다.

여자화장실을 기웃거리는 변태를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보고 싶어서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국 남의 영역을 몰래 들여다본 것밖에는 없습니다.

참 궁색한 행동입니다.

저는 이번 라우터 뉴스를 보면서 묘하게 그 생각이 겹쳐졌습니다.

사람이 남의 영역을 몰래 기웃거리기 위해 주인 몰래 구멍을 만든다면 뭐라고 할까요.

그런데 기계에 그런 구멍을 만들어 놓으면 우리는 그것을 백도어라고 부릅니다.

라우터의 백도어는 실제 보안 취약점이 될 수 있고, 악용될 경우 해당 장비뿐 아니라 같은 네트워크에 연결된 다른 장비까지 손을 뻗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왜 굳이 뒷문일까요?

정문이 있는데 말입니다.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면 정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정말 떳떳한 목적이라면 굳이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뒷문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뒷문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흔적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사람의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남의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들여다봐도 된다는 권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뒷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뒷문을 만들어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하는 것은

뒷문 자체가 아니라,

남의 영역을 몰래 들여다보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 Reuters, 2026년 8월 5일 보도 / VulnCheck 연구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