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결국 팔았다.
'매도'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마우스는 몇 번이나 그 위를 맴돌았다.
누르면 끝이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이 지긋지긋한 고민도 끝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한 번이 가장 어려웠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아니야. 여기서 욕심부리다 다시 떨어지면 어쩌지.'
'그래도 오늘 거래량이 좀 이상한데...'
몇 분 동안 같은 생각을 수십 번 반복했다.
주식은 결국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말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결국 클릭했다.
매도 완료.
짧은 문구 하나가 화면에 떴다.
순간 마음이 이상할 만큼 편해졌다.
수익은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실도 아니었다.
애매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더 이상 차트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잘한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해.'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주식은 늘 내가 팔고 나서 오른다.
그것도 꼭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날 아침.
습관처럼 증권 앱을 열었다.
안 보려고 했다.
정말 안 보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이미 판 종목인데도 궁금했다.
혹시 떨어졌을까.
내 선택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화면에는 빨간색 숫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7.8%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야...'
'왜 하필 오늘 오르는 거야.'
다음 날은 더 올랐다.
그다음 날도.
며칠 만에 내가 팔았던 가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계산이 시작된다.
'그날 안 팔았더라면...'
'하루만 더 기다렸더라면...'
'아니, 딱 일주일만 참았더라면...'
머릿속 계산기는 누구보다 빠르다.
이미 끝난 일을 가지고 수백 번도 더 계산한다.
하지만 그 계산은 단 한 번도 내 통장을 채워 준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들고 있을 때는 그렇게 무서웠다.
하루에 2%만 떨어져도 불안했고,
악재 뉴스 하나에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잠들기 전에도 미국 증시를 확인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해외 선물을 검색했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런데 팔고 나면 갑자기 용감해진다.
'그때 왜 팔았지?'
'조금만 더 버틸 걸.'
이미 위험이 지나간 뒤에 하는 용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판 것은 주식이 아니었다.
불안을 판 것이었다.
계좌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라,
매일 흔들리는 내 마음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도 버튼을 누르는 순간 편했던 것이다.
주식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잠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잔인하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시장은 처음부터 내 존재를 몰랐다.
내가 샀는지,
팔았는지,
후회하는지,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이 나를 놀리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투자를 오래 한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매매와 좋은 결과는 다르다."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매매이고,
결과가 나쁘면 실패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날의 나는 미래를 몰랐다.
내가 가진 정보 안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 안에서,
최선을 다해 결정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결과는 시장의 몫이었다.
그런데 나는 결과를 보고 과거의 나를 계속 심판하고 있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다.
요즘도 가끔 예전에 팔았던 종목을 검색한다.
예전 같으면 한숨부터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래.'
'그때의 나는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
그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말을 인정하는 순간,
후회도 조금씩 작아졌다.
투자는 결국 주식과 싸우는 일이 아니었다.
욕심과 싸우고,
두려움과 싸우고,
후회와 화해하는 일이었다.
차트는 매일 변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투자가 어려운 것이다.
오늘의 독백
나는 주식을 판 것이 아니라 불안을 팔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이 보면 좋은 글
투자자의 독백 #1 – 반도체를 놓치고 파란 계좌 앞에서 든 생각들
투자자의 독백 #5 - 남들은 다 돈 버는 것 같았습니다
'주식 및 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투자자의 독백 #8 - 수익은 계좌에 찍히지만, 유감은 마음에 남았습니다 (0) | 2026.07.08 |
|---|---|
| 투자자의 독백 #7 - 돈을 잃은 것보다 원칙을 잊은 게 더 위험했습니다 (0) | 2026.07.04 |
| 투자자의 독백 #5 - 남들은 다 돈 버는 것 같았습니다 (0) | 2026.07.02 |
| 투자자의 독백 #4 - 본전만 오면 팔겠다는 거짓말 (2) | 2026.07.02 |
| 투자자의 독백 #3 - 기다림도 투자라고 믿고 싶었다 (2) | 2026.07.02 |